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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람이

Famous Dogs 2008/05/22 17:42






[펌] ‘내 사랑 토람이’의 실제 주인공 전숙연

 

“토람이는 안내견 이상의 의미였어요. 막내아들 같았지요”


시각장애인 전숙연씨와 안내견 토람이의 사연이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셨다. 얼마 전 SBS-TV 특집드라마 ‘내 사랑 토람이’가 방송된 후 사람들은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의 관계를 생각해보게 됐다. 안내견이 시각장애인에게 헌신하는 모습은 감동 이상이었다. 그 사연의 주인공 전숙연씨가 토람이에 대한 기억을 풀어놨다.

토람이를 생각하면서 눈물로 쓴 책

그녀를 만나러 한빛맹학교에 가는 길. 마을버스를 타고 출발을 기다리는데, 창 밖으로 연인인 듯한 남녀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여느 연인과는 약간 다른 모습이었다. 두 사람은 시각장애인이었다. 케인(시각장애인의 지팡이)으로 길을 더듬는 여자의 팔짱을 끼고 남자가 조심스레 한 발 한 발 움직이고 있었다. 걷는 속도도 무척 느렸다. 남들이 두 발짝 움직일 때 그 두 사람은 겨우 한 발짝 옮기는 정도였다.

‘저러다가 사람들과 부딪혀서 넘어지면 어쩌나’라는 불안한 마음과 달리 두 사람은 여유 있는 웃음을 띠고 지나간다. 그러다 두 사람은 한 건물 앞에 섰다. 계단 앞에서 익숙한 듯 허공에 발을 몇 번 놓더니, 커피숍으로 향하는 2층 계단을 올라간다. 두 사람은 그렇게 내 시야에서 벗어났다. 그들은 누구의 도움 없이도 자신의 목적지로 한 걸음 한 걸음 옮기고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으니 사람들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는 선입관이 깨졌다. 만일 그 두 사람이 없었다면 그녀를 만나는 것이 어색했을 것이다. 그녀 역시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다.

전숙연씨(46)는 드라마 한 편으로 뜻하지 않게 유명인사가 되었다. 지난 1월 7일 SBS-TV에서 드라마 ‘내 사랑 토람이’가 방송됐다.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시각장애인의 길잡이 구실을 하는 개)의 만남과 헤어짐을 감동적으로 그린 이 드라마는 전숙연씨가 쓴 에세이집 「내 사랑 토람이」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전숙연씨는 시각장애를 이겨내고 서울 수유동에 있는 ‘한빛맹학교’에서 고등부 ‘이료 교사’(침, 한방, 마사지를 가르치는 교사)로 일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용 소리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글을 쓰니까 힘들었죠. 책을 낼 만한 능력이 안 되는데, 책을 펴내니까 많이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안내견 이상의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는 토람이를 널리 알리고 싶었어요. 글을 써서 책을 많이 팔려고 한 것은 아니니까, 솔직하게 썼어요. 토람이 생각 때문에 가슴이 많이 아팠어요.”

책을 펴내고 그녀의 이야기가 드라마화된 것도 모두 토람이 덕분이다. 토람이를 하늘로 떠나 보내고 1년간 힘든 시간을 보냈다. 2003년 2월, 무작정 토람이에 대한 얘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8월, 토람이를 분양받았던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그 소식을 듣고 글을 보내달라고 했다.

별 생각 없이 써놓은 글이었지만 안내견에 관련된 에세이집은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곳에서 안내견이 우리나라에 들어온 지 10년께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라도 책을 내자고 제안을 했다. 안내견학교의 도움으로 2004년 출판사를 소개받고 책을 출간하게 됐다. 그리고 안내견학교에서는 SBS의 한 프로듀서에게 토람이 이야기를 드라마화할 것을 제안했다.

“작가 한 분이 저와 이야기를 하면서 대본을 만들었어요. 그런데 그 작가는 소재가 어려워서 채택되기 힘들 것 같으니까 기대하지 말라고 했거든요. 드라마는 기대하지 않고 책이 나오기만을 기다렸어요. 그런데 지난해 추석에 드라마를 만들게 됐다는 연락을 받았지요. 하희라씨가 주연을 맡았다는 소식이 정말 기뻤어요. 제가 좋아하는 배우거든요.(웃음)”


10월에 작품발표회를 하고 촬영에 들어갔다. 하지만 사람과 안내견의 호흡이 잘 맞아야 하기 때문에 작업은 갈수록 어려워졌다. 2부작을 촬영하는 데 거의 2개월이 소요됐을 정도로 꽤 힘든 작업이었다고 했다. 하희라는 촬영에 들어가기 전에 전숙연씨를 만나 여러 이야기를 듣고 갔다. 드라마에서 하희라는 시각장애인 연기를 훌륭하게 해냈다. 하희라는 당시 모노드라마 ‘우리가 애인을 꿈꾸는 이유’를 끝낸 후 몇 개월을 쉴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본을 보고 감동받아서 출연 승낙을 한 것.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이야기는 많은 시청자들을 감동시켰다. 자연스럽게 토람이를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카페를 만들고 동호회를 조직했다. 전숙연씨는 예상치 못한 유명세를 타기 시작했다. 그녀는 많은 이들이 자신을 찾는 것이 반갑다. 하지만 자신에게만 과도한 관심을 주지 말고, 시각장애인에 대한 고충을 알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책과 드라마를 통해서 일반인들이 ‘만약 내가 시각장애인이 된다면?’이라는 상상을 했으면 해요. 장애인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려주고 싶었어요.”

전숙연씨의 바람은 이뤄진 셈이다. 드라마가 나간 이후 게시판에는 “너무 맘이 아파서 울었다” “감동받았다”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에 대해서 한 번 더 생각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라는 글들이 속속 올라왔다. 그녀 역시 집에서 식구들과 함께 게시판의 글들을 하나하나 살펴봤다고 한다. 전숙연씨와 토람이 때문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것을 실감했다. 토람이를 추억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써 내려간 글이 사회에 의미 있는 일이 된 것에 행복감을 느낀다.

토람이와의 만남, 그리고 헤어짐

그녀는 아주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범하게 자랐다. 교육학을 전공하고 남편을 만나 결혼을 했다. 큰아들 범영이가 걷기 시작하던 1992년, 부산에서 경남 김해의 진영이라는 곳에 있는 과수원으로 삶의 터전을 옮겼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중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 젊은 부부가 농사를 지으러 들어왔다는 사실 때문에 동네의 유명인사가 됐고, 온몸으로 흙과 태양을 느끼며 하루하루가 행복하기만 했다.

하지만 하늘은 그들의 행복을 시기했나 보다. 1992년 6월 25일, 과수원에 약을 치려고 보르드액(농약과 생석회를 섞어 만드는 것)을 만들 때였다. 물과 반응을 하면 끓어오르는 생석회를 잘못 건드려 얼굴과 목, 왼팔과 가슴에 화상을 입었다. 그날이 세상을 볼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화상으로 입은 상처와 눈을 고쳐보겠다고 3년여를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다. 그동안 전신마취 일곱 번, 부분마취는 2백 번도 넘게 할 정도로 많은 수술을 받았다. 몸도 마음도 지쳤고, 화상 환자이기에 1인실을 써야 해서, 수술비와 약값으로 재산을 거의 탕진할 즈음에 병원 생활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이런 상황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 어린 범영이와 은비가 받을 상처, 그리고 병원에서 먹고 자면서 간호를 해준 남편에게도 미안함 때문에 마음이 더욱 무거웠다. 자신으로 인해 온 집 안에 그늘이 뒤덮여 있었다. 가족들은 행여 또 다칠까 봐 모든 일을 그녀 대신 해줬다. 식사 때 밥 한 술 뜨면 여기저기서 얹어주는 반찬으로 밥을 먹어야 했다. 마치 사육당하는 기분이 들었고, 홀로 서고 싶었다.

“서울로 올라가겠다고 했죠. 가족들은 무조건 반대했구요. 그렇지만 그렇게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어요. 무엇을 해보고 싶다기보다 저 홀로 살아보고 싶었어요. 한국시각장애인복지재단 기숙사에 입소하는 날 남편이 사감 선생님한테 잘 부탁한다고 신신당부하더라구요. 저보다는 가족들이 더 걱정하던데요. 그때는 보이는 것이 없어서 겁나는 것도 없었죠.(웃음)”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1997년 맹학교에 입학했고, 당시 특수교육교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교육대학원에도 입학을 했다. 재활교사들이 특수교육 분야를 공부하는 것이 좋겠다는 권유 때문에 겁도 없이 시작한 것이다. 이런 시도를 할 수 있었던 것도 안내견 토람이 덕분이었다.

토람이는 1995년 10월 15일, 영국에서 태어났다. 품종은 골든 리트리버로 수컷이다. 뉴질랜드에서 안내견 교육을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고 우리나라로 건너왔다. 원래 이름은 헥터였고, ‘토실토실 우람’에서 따온 ‘토람’이로 이름이 바뀌었다. 꼬리도 길고 털이 고급 휘장의 술 장식처럼 꼬리 전체를 감싸고 있었다. 누구라도 토람이를 보면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직도 토람이를 생각하면 슬프죠. 안내견이다 보니 애완견처럼 먹을 것을 잘 챙겨주지도 못했거든요. 한겨울에 추운 대학원 교실 맨바닥에서 수업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면서 추위를 견디던 것도 생각나구요. DT(Dog Toilet, 강아지 화장실) 때문에 이웃들과 언쟁을 높이면 토람이는 분위기를 눈치 채고 시무룩해지거든요. 불쌍할 때도 많았어요. 뉴질랜드에서 교육을 받아 시멘트 바닥에서는 일 처리를 못 했거든요. 흙이나 잔디가 있어야만 볼일을 봤죠.”

맹학교와 대학원에서 수업을 받으려면 토람이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건널목을 지날 때, 사람 많은 버스와 지하철을 탈 때 토람이는 항상 그녀의 옆에 있었다. 사람들이 토람이의 발을 무심코 밟아서 피가 날 때도 절뚝거리는 발로 그녀의 길을 안내해야 했다. 나중에 토람이 발에서 피가 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듣고야 알았다. 개는 절대 안 태운다는 버스 기사와도 수없이 싸워야 했고, 개는 출입할 수 없다는 식당 지배인과도 언성을 높여야 했다. 토람이는 그녀와 사람들 사이의 언쟁을 아는지, 그녀 옆에 조용히 있기만 했다. 시각장애인으로 살아가는 어려움으로 눈물을 흘릴 때도 토람이는 곁에서 조용히 지켜봐줬다. 토람이는 안내견이자, 친구, 자식 그리고 카운슬러였다.

안내견과 시각장애인에 대한 배려와 이해가 부족한 사회에서 산다는 것은 흡사 전쟁과도 같았다. 그렇지만 토람이는 아무 말 없이 그녀의 눈이 되었다. 토람이를 데리고 길을 걸어가면 스타 대접을 받았다. 토람이의 잘생긴 외모 덕분이었다. 

토람이 덕분에 대학원 석사 학위도 받을 수 있었고, 맹학교도 졸업했다. 그녀의 눈이 돼준 토람이는 그렇게 그녀의 막내아들 같은 존재였다. 전숙연씨는 대학원과 맹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직장을 잡았다. 한빛맹학교 교사로 취직이 된 것. 그러는 동안 진영에 있던 가족들이 서울로 올라왔다. 혼자 힘으로 살아가는 엄마와 아내를 위해 남편과 아이들이 터전을 버리고 옮겨온 것.

그렇게 깨졌던 가족의 행복이 다시 찾아왔다. 하지만 2001년 6월 어느 날, 토람이가 아침에 일어나지를 못했다. 병원에 데려가니 ‘비장출혈’(비장에 생긴 육종이 자라나 장 출혈을 일으킨 병)이라는 선고를 받았다. 길어야 2개월이었다. 약 4년간 집 안의 막내처럼 평생 같이 살 줄 알았던 토람이가 사형 선고를 받은 것이다.

“토람이를 대신할 안내견을 분양받았을 때는 너무 힘들었어요. 계속 토람이 생각뿐이었거든요. 그때 대양이를 만났는데, 제 마음을 아는지 계속 눈치만 보더라구요. 어느 날인가 대양이를 훈련시키는데 제 눈치를 보는 모습이 너무 불쌍했어요. 토람이 때문에 대양이가 고생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죠. 하지만 토람이가 우리 곁을 떠난다는 사실은 정말 받아들이기 힘들었어요.”

어느 날 안내견학교에서 토람이가 힘들어한다는 것을 알려줬다. 아무 일 없기를 바라는 마음을 안고 토람이를 만나러 갔다. 통증 때문에 기진맥진하면서도 토람이는 그녀를 보자 갑자기 일어서려고 몇 번이나 몸을 추스르는 것 같았다. 토람이를 왼다리 곁에 얌전히 앉혔고, 대양이는 오른다리 곁에 자리를 잡았다.

한 손으로는 토람이를, 다른 한 손으로는 대양이를 쓰다듬었다. 자신의 무거운 짐을 짊어질 동생이 생겼다는 것을 아는지, 토람이는 그녀 앞에서 저세상으로 떠났다. 2001년 8월 24일이었다. 전숙연씨는 우리나라에서 안내견과 보행한 최초의 여자 시각장애인이고, 토람이는 그녀의 안내견이었다.

“토람이를 생각하면 아직도 슬픕니다. 하지만 토람이 덕분에 시각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많이 달라졌어요. 현재 80여 마리의 안내견이 있다고 알고 있어요. 저는 앞으로도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권리를 알리는 데 노력할 거예요. 캠페인 같은 것은 못해도 일상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많다고 봐요.”

전숙연씨가 토람이와 생활하면서 겪었던 어려움들이 이제는 그녀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그녀의 경험들이 시각장애인과 안내견의 권리를 되찾는 데 많은 역할을 할 것이다. 언제 어디서나 당당한 그녀의 모습이 보기 좋다.


취재 뒷이야기

전숙연씨를 처음 만났을 때 약간 당황했다. 서로 인사를 하고 명함을 꺼냈지만 그녀에게 주는 것이 예의인지 아닌지 망설여졌다. 점자 명함도 아닌데 앞을 못 보는 사람에게 필요가 있을까? 시각장애인을 만났을 때의 에티켓을 교육받아본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전숙연씨는 비장애인이 시각장애인을 도와줄 때 지켜야 할 에티켓을 이야기해줬다. 길을 알려준다고 시각장애인의 소매 끝을 잡고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은 피해야 한다. 시각장애인 입장에서는 그때가 가장 난처하고 창피하다고 한다. 그리고 웬만하면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지 물어보는 것이 가장 현명한 방법이라고 한다.

시각장애인을 인도하는 안내견이 귀엽다고 함부로 먹을 것을 주거나 주인의 허락 없이 쓰다듬는 것도 피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주는 음식을 먹는 것이 습관이 되면 길거리 보행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주인 외에 안내견에게 과도한 사랑을 주는 사람을 만나면 안내견은 혼란스러워한다. 안내견이 귀여워서 만지고 싶으면 꼭 주인의 허락을 받는 것이 에티켓이라고.

인터뷰를 위해 자리를 옮길 때 전숙연씨는 케인이나 안내견의 도움 없이 손과 감각만을 이용했다. 학교 내부 구조가 그녀의 머릿속에 담겨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동할 때는 꼭 케인을 이용해야 하는 줄 알았는데, 익숙한 길은 케인이 오히려 거추장스럽다고 한다. 학교는 시각장애인을 배려해 계단이 거의 없다.

토람이가 죽은 후 분양받은 대양이는 모 인터넷 사이트의 모델개처럼 보인다. 온통 검은빛으로 첫눈에는 위압감이 들지만, 자세히 보면 눈이 그렇게 선할 수 없다. 안내견의 특성상 사람에게 무조건 복종하기 때문에 낯선 사람을 보면 눈치를 많이 본다. 그리고 절대 사람을 보고 짖거나 무서운 행동을 하지 않는다. 주인 곁에서 묵묵히 자기 할 일만 한다.

전숙연씨와 대양이 사이의 교감은 예상대로 굳건했다. 대양이의 컨디션을 전숙연씨가 항상 챙기고, 대양이의 도움을 받은 후에는 “잘했어, 고맙다”라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그녀는 계속되는 사진 촬영으로 대양이가 피곤해하는 것을 알고는 “빨리 끝내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전숙연씨와 대양이를 보면서 ‘동반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현재는 토람이 대신 대양이가 전숙연씨의 눈이 돼주고 있다. 그녀에게는 애교도 부리지만, 낯선 사람은 경계하며 잘 따르지 않는다. 두번째 사진은 토람이와 가족이 함께 촬영한 것이다.

5년간 전숙연씨의 눈이 되어준 토람이. 골든 리트리버종으로 ‘토실토실’하고 ‘우람’하다는 뜻을 가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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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merry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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