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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규장각 도서 환수 모금 캠페인

임경수 2007.04.09 14:34
조회 53   스크랩 0

1. 니퍼의 "출신 배경"과 생애

1884 년, 영국의 브리스톨(Bristol) 시의 극장의 무대 배경을 그리는 화가인 마크 바로(Mark Barraud, 프랑스계 혈통이기 때문에 '바로드'가 아닌 '바로'로 발음합니다)는 어느 날 시내 거리를 돌아다니던 떠돌이 개 한 마리를 발견했습니다. 불테리어(bull terrier)와 폭스테리어(fox terrier)의 잡종인 이 개는 바로를 보자 그의 발치를 졸졸 따라다니며 퍽이나 붙임성있게 굴었고, 개가 하는 짓이 귀엽다고 느낀 바로는 결국 이 주인 없는 떠돌이 개를 집으로 데려와 키우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새로운 애견이 마치 엄마 치맛자락을 붙들고 그 뒤를 따라다니는 어린애처럼 유난히 사람들의 발치를 따라다니는 버릇을 갖고 있음을 안 바로는 그에게 영국 속어로 '꼬마둥이'를 뜻하는 "니퍼"(Nipper)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바야흐로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개의 이름이 탄생한 것입니다.


(니퍼의 유일한 사진)

니 퍼의 새 주인 바로는 그러나 니퍼를 집으로 데려온 지 불과 3년만인 1887년 39세의 나이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바로의 동생인 프란시스 바로(Francis Barraud)는 형의 장례식을 마친 뒤 니퍼를 자기 집에 데려가 키우기로 결정했습니다. 형과 마찬가지로 화가인 프란시스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틀리에에서 보냈고, 니퍼도 새 주인을 따라 아틀리에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프란시스는 그림을 그리는 동안, 당시 새로이 등장하여 어디서나 화제가 되고 있던 미국 에디슨-벨(Edison-Bell) 축음기 회사의 실린더형 축음기(cylinder phonograph)를 틀어놓고 작업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잠깐 붓을 놓고 쉬고 있던 프란시스는 문득 바닥에 내려놓은 축음기의 나팔관 앞에 니퍼가 고개를 갸웃하고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처음에는 무심하게 지나쳤지만 이내 프란시스는 니퍼가 그러고 앉아있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고, 흥미를 느낀 프란시스는 자세히 관찰한 결과 니퍼가 '도대체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하는 궁금증에 사로잡혀 나팔관 앞에 고개를 갸웃하고 앉아 거기서 흘러나오는 음악 소리에 골똘히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프란시스는 자신의 죽은 형이자 니퍼의 전 주인인 마크를 생각하고, 아마도 니퍼는 축음기의 나팔관에서 마크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재미있는 상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프란시스와 몇 해를 함께 산 니퍼는 그 뒤 아들과 둘이서만 살고 있던 프란시스의 형수(즉 마크의 미망인)의 적적함을 달래주기 위해 그녀의 집으로 보내졌고, 그 곳에서 1895년 9월에 늙어 죽었습니다. 프란시스와 그의 형수, 그리고 조카(즉 마크의 아들)는 킹스턴-어폰-템즈(Kingston-upon-Thames)의 공원 안 뽕나무 아래에 니퍼를 묻었고, 조그마한 비석도 세워주었습니다. (이 작은 무덤은 오늘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개의 무덤으로 제법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2. 그림으로 부활한 니퍼 - "His Master's Voice"

니 퍼가 죽은 뒤에도 축음기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귀여운 니퍼의 이미지는 프란시스의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1898년부터 프란시스는 니퍼가 에디슨-벨社의 실린더형 축음기의 나팔관 앞에 고개를 갸웃하고 앉아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그린 유화(油畵)를 그리기 시작하여 1899년 2월 11일 이 그림을 완성했습니다.


 


(His Master's Voice의 오리지널 버젼 : 에디슨-벨 포노그래프 축음기를 듣고 있는 니퍼)

 

그 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아틀리에를 방문한 프란시스의 친구는 프란시스로부터 에디슨-벨 회사에 그 그림을 가지고 갔다가 퇴짜맞은 얘기를 듣고, "어두운 색깔로 흐릿하게 그려진 나팔관 대신에 금빛으로 빛나는 나팔관을 그려 넣으면 그림이 훨씬 돋보일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친구의 충고에 동의한 프란시스는 그림을 싸들고 때마침 런던의 메이든 레인(Maiden Lane) 거리에 개업한 신설 축음기 및 레코드 회사인 그라모폰 축음기 회사(Gramophon Co., Ltd.)로 금빛 나팔관을 빌리러 찾아갔습니다.

그 라모폰社의 담당자들을 만난 프란시스는 자신의 방문 목적을 설명하고 그림을 보여주며 금빛 나팔관을 잠깐만 빌려줄 수 없겠느냐고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자리에 있던 그라모폰社의 사장 윌리엄 배리 오웬(William Barry Owen)은 프란시스의 그림을 보고 '이거 광고 되겠는데...'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His Master's Voice"의 최종 버젼)

 

이 새로운 상표는 당시 니퍼의 등장을 알리는 다음과 같은 광고 문구 덕분에 더욱 유명해졌는데, 이 광고 문구는 사실 부분적으로는 니퍼가 축음기의 나팔관에서 전 주인 마크 바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프란시스 바로의 상상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

"귀여운 강아지 니퍼는 음악을 유난히 사랑하는 주인 곁에서 음악을 즐겨 듣곤 했다. 주인은 늘 빅터 토킹 머신社의 그라모폰 축음기로 음악을 들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주인이 일찍 타계하자 니퍼는 밤낮으로 슬퍼하며 주인을 그리워했다. 그래서 니퍼는 지금도 주인이 생전에 즐겨 듣던 곡인 베버의 피아노곡 "무도회에의 권유"가 축음기에서 흘러나오면 냉큼 축음기 앞으로 달려가 고개를 갸웃하고 앉는다 - 혹 음악이 끝난 뒤 주인의 목소리(His Master's Voice)가 들려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퍽이나 감상적인 이 광고 문구는 축음기와 레코드의 가장 중요한 수요층인 여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덕분에 그라모폰 축음기와 디스크형 레코드는 더욱 날개돋친 듯이 팔려나가 에디슨-벨社의 포노그래프 축음기와 실런더형 레코드를 시장에서 몰아내는 데 적지않은 공헌을 했습니다.


(니퍼가 그려진 RCA의 LP 레코드 라벨)

출처: 다음까페 "옛 거장들을 기리며"(http://cafe.daum.net/memoriam)에 활동하셨던
보카치오(Boccachio)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Posted by merry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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