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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왜 ‘보신탕’이라고 에둘러 말할까

기사입력 2008-07-23 09:20

왜 ‘보신탕’이라고 에둘러 말할까

【서울=뉴시스】

◇신동립의 잡기노트

바야흐로 보신탕 시즌이다. 개사랑 끔찍한 남녀노소와 변종 민족주의자 사이에 연례적 말싸움 놀이가 벌어지는 계절이다. 사람이 어떻게 개를 먹을 수 있느냐는 감성에 호소하는 것일 뿐 논리는 아니다. 개고기 옹호자는 전통 음식문화를 즐기는데 왜 외국의 눈치를 봐야 하나며 전의에 불탄다. 예외없이, 거위 간도 먹으면서…를 들먹인다.

해외 사례 열거도 별무소용이 된 지 오래다. 옛날에 노태우가 영국여왕을 만나고 나간 뒤 여왕이 궁전 정원의 개 마릿수를 세는 만화가 현지 일간지에 실렸다, 미국지사로 발령난 아버지를 따라간 어린이가 식견종이라고 학교에서 왕따 당하고 있다는 실화도 더 이상 먹혀들지 않는다. 한국의 보신탕이 참 맛있다는 백인의 실명이 줄줄이 제시된다.

개는 여느 짐승과 다르다, 정을 주고받는 반려동물이다, 가족처럼 지내다 잡아 죽일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식의 하소연 역시 비논리적이다.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왜 동물을 차별하는가, 소 돼지 닭도 정겹기만 하던데, 식물이 불쌍해요라는 대응이 잇따른다.

이처럼 동물보호 실천가를 조롱부터 하고 보는 부류가 아니라면 타협안으로 설득한다. 식용견과 애완견은 별개다, 고문치사 대신 고통없이 죽이면 괜찮지 않을까라는 양대 이론이다. 황구는 본래 먹으라고 있는 것이라며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한다.

그런데, 누런 진돗개도 보신탕 감이다. 치와와, 요크셔테리어 같은 조막 만한 개는 근수가 덜 나오는 덕에 연명할 따름이다. ‘상근이’그레이트피레네, ‘베토벤’세인트버나드는 매우 푸짐한 고깃덩이다.

보신탕을 근절해야 마땅한 폐습으로 규정하는 측은 무서운 귀신을 끌어들이기도 한다. 불교 사찰은 기르던 개가 죽으면 49재를 치른다며 운을 뗀다. 사람의 환생 마지막 단계가 개라고 귀띔한다. 개를 먹으면 식인종이 될 수도 있다는 위협이다.

개고기를 먹은 날은 이상하게 일이 꼬이거나 크고 작은 사고를 겪지 않던가, 되는 일이 없는 보신탕집 주인이 굿을 했더니 목이 잘린 개 귀신들이 우르르 나타났다더라, 개를 먹는 사이비 도사의 꾐에 빠져 육체관계를 맺은 어느 여자가 헛것을 보게 됐는데 알고보니 얼치기 술자의 탁한 개고기 기운이 옮아왔다지 뭔가 운운하며 어르고 달랜다.

잠시 찜찜해질 수는 있겠다. 하지만 광우병 공포를 한 방울 쯤 떨어뜨리지 않는 한 개고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보신탕에 반대한다면 신규 포식자 발생을 예방하는 편이 나을 지도 모른다.

치솟는 수은주에 정비례, 개들의 불안이 커지는 한여름이다. 29일 중복, 8월8일은 말복이다.

‘저를 다정스럽게 대해 주세요. 이 세상 그 어느 것도 저보다 더 당신의 친절에 감사하지는 못 할 것입니다. 저를 때리려 할 때 제가 손을 핥는다고 회초리를 들지는 말아 주세요. 제 가슴이 산산이 부서지고 마니까요. 인내와 이해심으로 저를 가르치신다면 더욱 빨리 당신의 뜻을 헤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자주 말을 걸어 주세요. 당신의 목소리는 세상에서 가장 감미로운 음악입니다. 발자국 소리만 들어도 제 꼬리는 반가움으로 요동칩니다. 춥거나 비가 올 때면 집 안으로 들어가도록 허락해 주세요. 저는 이미 야생동물이 아니거든요. 그리고 난롯가 당신의 발치께에 앉게 해주세요. 특권이 아니라 더 없는 영광이니까요.

비록 당신이 변변한 집 한 채 갖고 있지 못해도, 얼음과 눈을 뚫고서라도 당신을 따르겠어요. 따뜻한 실내의 보드라운 베개를 원치 않아요. 당신 만이 저의 신이고 저는 열렬한 숭배자이기 때문이지요.

제 밥그릇에 신선한 물을 채워 주세요. 그릇에 물이 없어도 원망은 않지만, 저는 갈증을 표현할 수 없거든요. 깨끗한 먹이를 주세요. 그래야 제가 튼튼히 뛰놀며 지시를 따를 수 있잖아요. 또 제 몸이 건강해야 옆을 따라 걷다가 당신이 위험에 처했을 때 목숨을 다 해 지켜드릴 수 있답니다.

사랑하는 주인님, 하나님이 제게서 건강과 시력을 거둬가더라도 멀리 하지 말아주세요. 부드러운 손길로 저를 어루만져 주시며 영원한 휴식을 위한 자비를 베푸시기를 소원합니다.

끝으로 저는 마지막 호흡까지도 느끼면서 당신 곁을 떠날 것입니다. 제 운명은 당신의 두 팔 속에서 가장 행복하고 안전했다는 기억과 함께.’

20여년 전 한글로 옮긴 ‘강아지의 기도’다. 이제는 동물병원 약봉지나 진료수첩에서 쉽게 볼 수 있게 된 글이다. reap@newsis.com
Posted by merry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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