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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희본의 개 이야기] 개가 TV를 본다?
냄새 없으면 사물 인식 못해… 소리에는 잠깐 반응할 수 있어
몇 해 전에 스코틀랜드 원산 종인 스코티시 테리어를 기른 적이 있다. 검은 색의 수놈이었는데 약간 사나워서 간혹 있는 방문객들을 당황시키긴 했지만 매우 활발하고 집을 잘 지켰다.

대체로 썩 영리한 종이 아닌 이 녀석은 내가 TV를 보기 위해 소파에 앉으면 항상 나의 왼쪽에 바짝 기대어 앉아 같이 TV를 쳐다보곤 했다. 집중해서 쳐다보는 모습이 꼭 TV를 즐기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녀석은 묘한 짓을 하기 시작했다.

당시 내가 즐겨보던 드라마 속의 주 무대인 주인공의 집을 지키기 시작했던 것이다. 가만히 있다가 주인공의 집에 낯선 사람이 들어 오면 짖어대는 것이다. 나는 깜짝 놀랐지만 녀석의 이런 행태는 지속됐다. 상당히 드문 경우지만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드라마를 보다 보니 나름대로 그 드라마에 순간적으로 몰입하였던 모양이다. 이런 경우라면 정말 개가 TV를 보고 즐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개들마다 어떤 놈은 TV에 많은 관심을 보이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하다. 그러나 거의 대부분의 개는 TV를 즐길 수 없다. 우선 개에게는 가상 현실을 현실로 상상하여 즐길 수 있는 지적 능력이 없다. 개는 종합 분석하는 능력이 없으며, 거의 기억에 의존하여 생활한다. 그리고 한마디로 개는 지독한 현실주의자다. 냄새가 없으면 관심도 없다고까지 말할 수 있다. 개들은 그들의 주 감각기관인 코를 통해서 사물을 인식하려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개 코의 능력은 가장 민감하게 맡을 수 있는 초산 계통 냄새의 경우 인간의 약 100만배에 이른다고 알려져 있다.

주인의 희로애락을 그때마다 변하는 체취를 통해 알아차린다니 그들의 엄청난 냄새의 세계를 우리 인간은 상상도 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간은 주로 눈으로 보고 사물을 확인하지만 개는 최종적으로 냄새를 맡고 확인한다. 만약 창 밖의 주인을 보았을 때, 개는 창에 코를 먼저 들이댄다. 눈보다는 코로 확인하려는 행동이다.

개는 냄새가 나지 않으면 대체로 현실로 인식하지 않는 습성을 가지고 있다. 아무리 정교하게 잘 만든 개 인형을 갖다 주어도 거기서 개 냄새가 나지 않으면 개로 인정하지 않는다. TV에 개가 나와도 마찬가지다. 우리의 TV는 아직까지 냄새를 재현하지 못하므로 당연히 개들은 TV의 내용을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개 짖는 소리나 이상한 소리가 들렸을 때 또는 빠른 움직임 등에 수렵적 본능으로 반응을 했다가도 곧 흥미를 잃어버리는 것이 TV에 대한 개의 자연스런 행태이다. 동물학자들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개는 TV의 화면보다는 소리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으로 관찰되었다.

그러나 새나 고양이의 경우는 다르다. 이놈들은 냄새에 집착하지 않으므로 오히려 다른 행태를 보인다. 새는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보고 동료인가 쪼아보기도 하며 관심을 보인다. 고양이도 실내에서만 사는 경우 TV에 몰입하는 경우가 많다.


/윤희본 | 아시아 애견연맹(KCUA) 국제심사위원. 성균관대 불어불문학과 졸업. 대통령 정무기획비서실 국장 역임.

Posted by merryhap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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